“남한의 양심 깨울 수 있다면” 두만강 건넌 선교사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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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희 교수의 조국을 위해 울라] <5> 말 못하는 자를 위해 입을 열라
2016년 2월 경기도 수원흰돌산기도원에서 열린 제15차 북한구원 금식성회에서 참석자들이 등단해 북한복음화를 위한 헌신자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너는 말 못 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잠 31:8)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잠 24:11)

2009년 12월 초 중국에 있던 로버트 박 선교사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크리스마스에 두만강을 건너 북한 땅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말려야 할지 지지해야 할지 분별할 수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후 박 선교사가 중국과 북한을 잇는 다리에서 무릎 꿇고 기도한 후 성경을 품고 북한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로버트 박 선교사가 북한구원 금식성회에 참석해 북한의 인권탄압 중단을 위해 중보기도를 요청하는 모습.

재미교포인 박 선교사는 20대 후반 한국에 나와 북한 동포의 참상을 온몸으로 호소했다. 말씀을 전할 때 강대상에서 무릎 꿇은 채 마이크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중국 땅에서 탈북민의 고통과 탈북민을 잡으러 다니는 중국 공안을 봤다. 탈북민을 잔혹하게 끌고 가서 처형하는 북한 보위부원들의 행태에 분노했다. 그는 교회와 각종 기도 모임을 찾아다니며 북한의 실상을 알렸다. 매주 금요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위하고 2009년 추석에는 신촌에서 단식시위를 했다.

무심하고 반응 없는 교인들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서울역광장에서 북한 인권을 위한 집회를 주도했다. 아무리 외쳐도 무심한 시민을 바라보며 서울역광장에서 무릎 꿇고 목 놓아 울었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했다. “내가 북한 땅에 들어가서 죽으면 그때는 남한 사람들의 양심이 깨어날 것입니다.” “북한에 들어가서 김정일에게 더 이상 북한 주민들을 억압하고 굶겨 죽이지 못하도록, 정치범수용소에서 자행되는 각종 고문과 영아 살해, 강제 낙태, 생체 실험 등 끔찍한 만행을 멈추도록 이야기하겠습니다.”

입북 직전 로이터 통신과 했던 인터뷰는 입북 후 발표됐다.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제노사이드입니다.… 하지만 정치범수용소를 운영하고 어떠한 제재도 없이 사람, 여성, 아이들을 마구 죽이는 국가는 결코 신뢰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저는 오바마 대통령이 와서 돈을 지불하고 저를 데려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대신 저는 북한 사람들이 풀려나기를 원합니다. 정치범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저는 그곳에서 나오기를 원치 않습니다. 제가 그들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저는 죽을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인이고 성경에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자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박 선교사가 북한에 갖고 들어갔던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김정일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북한 지도자들에게.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오늘 당신과 북한 인민들을 구원하시기 원하십니다. 죽어 가는 북한 인민들을 살릴 식량, 의약품, 생필품 등과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도와줄 물품들을 갖고 들어갈 수 있도록 국경의 문을 열어 주십시오. 그리고 모든 정치범수용소를 폐쇄시키고 정치범들을 석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각종 고문과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도와줄 사역팀이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지 모든 북한 사람들이 자유롭고 안전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모든 북한 인민들에게 사랑과 존경과 우정을 보내면서. 로버트 박.”

박 선교사가 북한 땅에 들어간 이후 북한을 위해 기도했던 성도들이 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2010년 2월 6일, 43일 만에 석방된 박 선교사의 몸과 마음은 심각할 정도로 충격과 손상을 입었다. 고문과 약물 투입, 가혹한 성고문 등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갖게 됐다. 미국에서 7개월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나 자살을 2차례 시도했다. 심각한 성고문의 후유증으로 “결혼도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박 선교사와 함께 대북 인권 활동을 했던 조성래씨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에게 마약을 주사해서 한 방에 여자와 함께 있는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협박할 정도의 나라라면 무슨 얘기가 더 필요하겠습니까”라고 밝혔다.

북한은 가혹한 성고문 때문에 다시는 그가 얼굴을 들고 활동할 수 없으리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2010년 가을 조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남한 성도들에게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 때문에 절규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각종 고문의 후유증으로 2011년 2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미국 언론 기고를 통해 북한해방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2017년 10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를 보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 못 하는 자를 위해 대신 말하고, 또 핍절하고 원통한 사람들을 위해 변호하라고 이야기한다.(잠 31:8)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육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라고 말씀한다.(잠 24:11)

더 늦기 전에 우리는 말 못 하는 북한 동포의 생명 자유 인권을 말해야 한다. 정치범수용소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성도를 위해 기도하고 정치범수용소가 하루빨리 해체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김일성 일가의 우상화와 신격화 체제 속에서 복음 들을 기회도 없이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사망에서 건져내야 한다.

이용희 교수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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